01.25.2026 주일 예배 :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 newlifevisionchurc
- 4시간 전
- 3분 분량
본문 : 갈라디아서 6:1~2 (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요.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경공부 중에는 ‘새로운 삶’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생명의 삶’ 성경공부 다음 과정입니다. 이 새로운 삶 공부를 하다 보면 ‘오이코스’라는 단어를 배우게 됩니다. ‘오이코스’는 헬라어로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한 자매가 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것이 바로 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형제자매 여러분”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오늘 본문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고 있는데요 개역개정 성경에는 “형제들아”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조금 하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성경에서 “형제들아” 이렇게 말씀해도 거기에는 형제뿐만 아니라 자매들도 다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 성경공부를 하시게 되면 보게 되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시고 질문에 한번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진흙에서 놀던 소년이 당신의 집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너희 집에 가서 깨끗하게 씻고 다시 와라
그냥 들어와, 진흙 묻은 것 쯤은 상관없어
잠깐만 거기서 기다려 줄래, 내가 딱아 줄께
못된 습관 좀 버려라
여러분은 어떤 답을 선택하셨습니까?
이 책의 저자인 랄프 네이버 목사님은 3번 ‘잠깐만 거기서 기다려 줄래, 내가 딱아 줄께’가 예수믿는 우리가 반응해야 할 태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관심이고 도움이기 때문입니다.
1번은 ‘거부’라는 것입니다.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2번은 친절한 것 같지만 ‘무관심’이라는 겁니다. 지금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4번은 우리가 가장 해서는 안될 ‘비난’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진흙 정도가 아니라 ‘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여러분이 선택한 답을 바꾸지 않으실 자신이 있습니까?물론 이 책의 저자는 새로운 사람이 우리 교회를 찾아왔을 때, 만약 이런 사람이 온다면 교회는 이 사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 안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분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기도원을 세운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성도들이 마음을 합쳐서 잘 감당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 다음 주까지 3억5천만원을 못 갚으면 주일에 와서 교회로 와서 소란을 피우겠다고 건설회사에서 난리를 친겁니다.
장로님들을 비롯해서 당회 멤버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누구를 불렀나 하면 교회에서 사업을 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직분에 상관없이 다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담임 목사님이 참 실망스러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제가 여기까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여기있는 분들이 책임을 져 주세요” 이 말씀을 하시고는 그냥 나가 버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담임 목사님이 저러실 수가 있지? 그래도 교회의 리더가 아니신가? 그 순간 제게는 목사님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교회에서 가장 오래되신 장로님이 일어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목사님의 마음을 백번, 천번도 이해하고 남습니다”
이 분은 다른 장로님에 비해 나이는 제일 많으셨지만 재산도, 세상적인 지위도 없는 그런 분이셨어요. 당시 제가 섬기던 교회에는 세상 기준으로 보면 잘 나가는 장로님, 안수집사님들도 계셨거든요.
이 분이 평소에 제 눈에 어떻게 보였냐 하면 다른 장로님, 안수집사님에 비해서 겸손하시다 못해 좀 힘이 없으시다 하는 그런 느낌을 주셨던 분이셨어요. 자기 주장도 별로 없으시고 늘 다른 분의 뒤에 계신 분이셨어요. 그런데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주저하는 그 자리에서 이 분이 말씀을 이어가시는 겁니다. “우리가 어떻해든 해결해 봅시다. 몇 십만원도 좋고, 몇 백만원도 좋고, 그 이상도 좋으니 한번 모아봅시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서는 상황이 좋아지면 교회가 꼭 갚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해결 되었겠어요? 해결되지 않았겠어요? 그 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있던 분들에게 감동을 주셔서 깨끗하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장로님은 새벽마다 전 성도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이 분한테는 목사님이나 성도들이 다 가족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한 가족입니다. 오이코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가, 내 아들이, 내 딸이, 내 형제가 어려운 일이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안되잖아요, 어떡하든 도와야 되잖아요,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봐야 되잖아요.
우리가 한 가족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갈6:1~2)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요.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믿지 않는, 교회 밖의 누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죄에 빠져 있거나 부족함이 심하게 보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 사람이 죄와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하나 이야기해주고, 앞으로 그런 죄를 짖지 않도록, 앞으로는 그렇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알려주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갈라디아서는 율법에서 자유하라는 메세지를 주는 책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덮어버리려는 율법주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그 율법주의를 막기 위해서 바울이 보낸 편지글이 바로 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렇게 율법적으로 정죄하고 비난하고 할 것이 아니라,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주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경험하는 일 아닙니까?
부부간에, 또 부모 자식간에 서로 정죄하고 비난해서 서로의 부족함이 고쳐집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들 그렇게 해보셨잖아요? 고쳐지던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세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본문을 보겠습니다. 6장1절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첫번째는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라고 합니다.
이 ‘바로잡아 주다’라는 동사의 원어적 의미는 ‘치유하다, 회복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유일한 도구는 바로 ‘사랑’입니다. 그것이 바로 온유한 마음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로잡아 주라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바로 잡아주려고 한다면 온유한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라는 겁니다.
이어서 본문을 볼까요,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요”
두번째는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이지요?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되지!’ 하고 누구를 비난하고 정죄했는데, 어느 순간 내 자신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보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도 그런 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도 그런 부족한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죄에 빠져 있는 모습이 보이면, 우리 중에 누가 많이 부족해 보이면 나부터 먼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세번째로 권면하는 것이 바로 서로 짐을 져 주라는 것입니다.
본문 6장2절 말씀입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만약에 정집사님이 어깨에 쌀 한포대를 지고 있다면 본인이 알까요? 모을까요? 당연히 본인이 알지요. 그러면 바로 뒤에 계시는 심집사님 눈에는 정집사님 어깨에 있는 짐이 보일까요? 안보일까요? 당연히 보이지요.
어떤 때에는 내가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짐이 가벼울 때입니다. 그러나 짐이 너무 무거우면 나도 알고, 남도 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짐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말합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가 죄와 유혹에 빠져 있다면, 우리 중에 누군가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다면, 그 짐을 좀 나눠서 져주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비난부터 하지말고, 왜 그렇게 밖에 못하느냐고 무시하지 말고, 그 짐을 좀 나눠 져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2절이지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법’이 뭘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의 짐을 져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 사랑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14~15절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갈5:14~15)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하면, 피차 멸망하고 말 터이니, 조심하십시요”
모든 율법은 이 한 말씀 속에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그런데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하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멸망하게 말 터이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오이코스,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제 아내와 저는 만난지 8년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도 한참 동안 아내는 저를 많이 불편해 했습니다. 밥 먹을 때도 그렇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그렇고 아무튼 제가 많이 불편했던 거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가 있는데도 방귀도 뀌고 편하게 옷도 갈아입고 그러는 겁니다. 이제 이 사람이 나를 정말 편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부부끼리 대화하면서 직장에서나 볼 수 있는 예의를 갖춰서 대화하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실수도 하고, 못난 모습도 보이고 그러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가족이니까, 내가 좀 실수를 해도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까, 서로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나오는 것은 결혼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세상에 잘 난 남자, 잘 난 여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내 옆에 있는 남편이, 아내가 그런 잘 난 사람과 비교했을 때 못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아내를 다른 여자하고 한번도 비교해 본적이 없습니다. 목회를 하기 전에도 그랬고 목회를 하고 난 후에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외출하기 전에 거울을 보고 머리를 다듬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그랬습니다. “아빠, 아빠는 이제 잘 보일데도 없잖아요, 그냥 대충하고 가세요” 결론은 내 남편, 내 아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솔직히 다른 집 아이들이 부러운 적이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그 아이들의 부모가 부러웠던 거지요. 요즘 뛰어난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국에 사는 동문들 카톡방이 있는데 자식 자랑이 가끔 올라옵니다. 이번에 우리 아이가 이런 대학에 들어갔다는 겁니다. 하바드, 예일, 에어포스 아카데미, 웨스트 포인트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올라오면…… 솔직히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 우리 애들이 누굴 닮았겠나 생각해 보면 비교하는 제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겁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가 제일 이쁘다고 하잖아요. 지금은 너무나 잘 성장해 준 두 아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딱 맞는 아이들을 주셨던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도 우리 부모를 보는 눈은 마찬가지 일겁니다. 자기들 눈에 왜 잘난 부모들이 안보이겠어요? 요즘 세상에 잘 난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희들도 그런 사람을 아버지로 만났으면 너희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
그런데 제 생각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아버지와 엄마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피터 레이놀즈라는 작가가 쓴 ‘점(The Do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입니다. 이 책에 보면 그림 그리기를 아주 싫어하는 베티라는 아이가 나옵니다. 미술시간이 다 끝나가는데도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다가와서 “그럼 네가 그리고 싶은 데로 한번 해보렴” 하니까 이 아이가 화가 났는지 연필을 움켜쥐고 도화지 한가운데를 콱 찍고는 그것을 제출하는 겁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 도화지를 내밀며 “자, 여기에 네 이름도 써줄래?”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 방에 갔더니 자기 이름이 쓰여진 점이 찍힌 액자가 걸려 있는 겁니다. 이 아이가 그것을 보고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겁니다. 그 뒤로 베티는 연필뿐만 아니라 물감을 가지고 다양한 모양으로 점들을 그렸습니다.
얼마 후에 학교에서 그림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베티가 그린 크고 작은 다양한 점들이 어우려져 있는 그림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베티는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베티에게 한 아이가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자기도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 때 베티는 도화지를 주면서 뭐든지 그려보라고 합니다. 그 아이는 한참을 끙끙거리더니 겨우 삐뚤삐뚤한 선 하나를 그렸습니다.
그러자 베티가 말합니다. “자, 여기에 네 이름도 써줄래?”
지금까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셨습니다. 점 하나 겨우 찍을 수 밖에 없는, 선 하나 겨우 그릴 수 밖에 없는, 그것도 삐뚤삐뚤하게 그릴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주님은 기다려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다면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지금 집에서 예배드리지만 우리 교회 가족들 얼굴을 한번 떠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기다려 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줘야 할 한 가족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줘야 할 한 가족입니다. 서로 짐을 져 줘야 할 한 가족입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6장1절과 2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갈6:1~2)“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요.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또 우리 가정 안에서, 좀 못난 모습이 보이더라도, 좀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아니 많이 못나고, 많이 부족하더라도, 서로 이해해 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는, 또 서로의 짐을 져주는 예수님의 사랑을 완성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