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은 마을에 사는 노 부부가 살았습니다. 자식들을 모두 도회지로 보내고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부부만 단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집은 이층 목조로 지어진 백년은 족히 된 건물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계단도 좁고 가팔라서 오르내리기가 힘들고, 재래식 화장실은 문간에 있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늘 집좀 수리하고 살자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방학이 되어 유치원에 다니던 손녀가 놀러왔습니다. 손녀를 끔찍히도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손녀만 쳐다보고, 손녀의 말노름에 시간 가는줄 모랐습니다. 손녀를 목마 태워서 동네를 한 바퀴씩 도는 것을 쉽게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녀가 그만 화장실을 가다가 계단에 굴러 이마를 다쳤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다그쳤고, 며칠 뒤 그 집은 말끔히 단장되어 새 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아까시던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요청에는 꿈적도 안하시다가 손녀가 다치자 그날로 마음을 바꾸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서는 집 수리에 드는 비용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사랑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부었습니다(마26:6-13). 노동자 일년 품삯에 해당하는 값의 향유를 한 순간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또 누가복음 15장의 아버지는 아버지를 거역하고 나갔다가 돌아온 아들을 위해 좋은 옷을 입히고, 금 가락지를 끼우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낭비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를 위해 아끼지 않고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 같습니다. 그런 낭비 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일 것입니다. 돈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내 돈을 아낌없이 사용한다면 그의 사랑도 또한 그 낭비하는 돈과 비례할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더 낭비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낭비가 어디 있을까요!
우리 새생명비전교회 모든 식구들도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낭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목양실에서 원성재 목사